이 글은 『다윈과 게놈지도가 놓친, 진화의 실체 칼슘』(윤종원) 제1장 전문입니다. 본문·수치·인용은 원고 그대로이며, 소제목은 원문 안의 소제목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서론: 하나의 숫자가 던지는 질문
생명과학을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 숫자를 외워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세포질 내 자유 칼슘 농도, 약 100나노몰. 교과서에 나오는 이 숫자를 우리는 그냥 암기하고 넘어갑니다. 시험에 나오니까요. 그러나 잠깐 멈추어 이 숫자가 의미하는 바를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왜 하필 100나노몰일까요? 왜 1마이크로몰도 아니고, 10나노몰도 아닌, 정확히 이 범위일까요? 그리고 여기서 더 놀라운 질문이 떠오릅니다. 대장균에서 인간 신경세포에 이르기까지, 38억 년이라는 상상하기 어려운 시간 동안 갈라져 나온 모든 생명체가 왜 이 숫자를 고집하는 것일까요? 박테리아와 인간은 공통 조상에서 갈라진 지 수십억 년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유전자는 수없이 바뀌었고, 형태는 완전히 달라졌으며, 서식 환경도 극과 극으로 나뉘었습니다. 심해 열수구에서 400도에 가까운 물을 뿜어대는 분출구 옆에서 사는 고세균이 있고, 히말라야 8000미터 고지에서 희박한 산소를 호흡하며 사는 야크가 있고, 남극 빙하 아래 영하의 바닷물에서 유영하는 물고기가 있습니다. 이 생물들의 세포는 전혀 다른 조건에서 작동합니다. 그런데 세포질 칼슘 농도만큼은 거의 똑같습니다.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생명의 가장 근본적인 비밀이 숨어 있으며, 그 비밀을 이해하는 것이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칼슘과 진화의 관계를 이해하는 첫걸음이 됩니다.
세포 안과 밖의 극단적 차이
세포질 내 칼슘 농도가 약 100나노몰이라는 사실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해 보면 이것이 얼마나 낮은 농도인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100나노몰은 0.0001밀리몰에 해당하는데, 이것은 1리터의 물에 칼슘 이온이 약 4마이크로그램밖에 녹아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물론 세포 종류에 따라 50나노몰에서 200나노몰 사이에서 다소 차이가 있지만, 지구상의 거의 모든 세포가 이 좁은 범위 안에 수렴한다는 것은 여러 세포생물학 연구기관에서 수십 년에 걸쳐 반복적으로 확인해 온 사실입니다. 그런데 세포 바깥, 즉 세포외액의 칼슘 농도는 약 1밀리몰에서 2밀리몰입니다. 인간의 혈액 속 칼슘 농도가 대략 이 범위에 해당하고, 바닷물의 칼슘 농도도 약 10밀리몰로 세포 안보다 훨씬 높습니다. 이 두 숫자를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면 놀라운 사실이 드러납니다. 세포 안과 밖의 칼슘 농도 차이가 1만 배에서 2만 배에 달한다는 것입니다. 세포막이라는 두께 약 7나노미터의 얇디얇은 지질 이중층을 사이에 두고, 칼슘 농도가 무려 1만 배 이상 차이가 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것은 마치 높이가 수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댐의 양쪽에 수위 차이가 극단적으로 벌어져 있는 것과 같습니다. 물은 자연스럽게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려 하고, 그 힘은 수위 차이가 클수록 강력해집니다. 마찬가지로 칼슘 이온도 농도가 높은 세포 밖에서 농도가 낮은 세포 안으로 끊임없이 밀려들어오려 하며, 이 압력은 상상 이상으로 강력합니다. 이 엄청난 농도 기울기를 거슬러 칼슘을 세포 밖으로 퍼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세포는 생존을 위해 막대한 에너지를 이 작업에 투입해야 합니다.
세포는 이 극단적인 농도 차이를 유지하기 위해 여러 종류의 정교한 분자 기계를 쉬지 않고 가동합니다. 세포막에 박혀 있는 칼슘 펌프, 즉 PMCA라고 불리는 단백질은 ATP라는 에너지 화폐를 한 분자씩 소비하면서 칼슘 이온을 하나씩 세포 밖으로 밀어냅니다. 이 펌프는 칼슘 이온 하나를 내보내기 위해 ATP 한 분자를 가수분해해야 하는데, ATP 한 분자에는 약 30.5킬로줄 퍼 몰의 에너지가 저장되어 있으니, 이것은 결코 저렴한 작업이 아닙니다. 소포체 막에 있는 SERCA 펌프는 세포질의 칼슘을 소포체라는 세포 내부의 칼슘 저장고 안으로 격리시키는데, 이 펌프도 ATP를 소비하며 칼슘 두 개를 소포체 안으로 집어넣을 때마다 ATP 한 분자를 사용합니다. 미토콘드리아라는 세포의 발전소도 칼슘을 흡수하여 완충 역할을 하며, 나트륨-칼슘 교환기는 나트륨 이온 세 개를 세포 안으로 들이는 대신 칼슘 이온 하나를 세포 밖으로 내보내는 방식으로 작동하는데 이 시스템은 특히 심장세포에서 심장 박동의 리듬을 조절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 모든 시스템이 24시간 365일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가동됩니다. 잠을 자는 동안에도, 심지어 동면하는 동물의 세포에서도 이 펌프들은 멈추지 않습니다. 여러 생화학 연구기관에 따르면 세포가 전체 에너지의 약 5퍼센트에서 10퍼센트를 오직 칼슘 농도 유지에만 쓴다고 하는데, 이것은 엄청난 투자입니다. 인간의 뇌가 전체 에너지의 약 20퍼센트를 소비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칼슘 농도 유지에 들어가는 에너지가 얼마나 막대한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세포는 왜 이토록 비싼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칼슘을 배제하려 할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다른 이온들과 비교해 보면 칼슘의 특이성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나트륨의 경우 세포 밖 농도가 약 140밀리몰이고 세포 안 농도가 약 10밀리몰이어서 농도 차이가 약 14배입니다. 이 농도 차이를 유지하는 것도 에너지가 들지만, 그래도 14배입니다. 칼륨의 경우 세포 밖 농도가 약 4밀리몰이고 세포 안 농도가 약 140밀리몰로 이 이온은 반대로 세포 안이 더 높지만 그래도 농도 차이는 약 35배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칼슘은 1만 배에서 2만 배입니다. 다른 주요 양이온들이 수십 배 수준의 농도 차이를 유지하는 데 비해, 칼슘만 유독 1만 배 이상을 유지한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줄까요? 칼슘 제어는 세포에게 다른 이온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최상위 관리 항목이라는 것입니다. 나트륨과 칼륨의 농도 차이는 신경 신호 전달과 세포의 부피 조절에 중요하지만, 칼슘의 농도 차이는 그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무언가와 관련이 있습니다. 세포는 왜 유독 칼슘만 이렇게 철저하게 배제할까요? 그 답은 칼슘의 독성에 있습니다.
칼슘의 독성: 세포가 칼슘을 두려워하는 이유
세포질에는 생명 활동에 필수적인 분자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습니다. ATP, ADP, DNA, RNA, 그리고 수천 종류의 단백질들. 이 중에서 ATP, DNA, RNA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인산기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ATP는 아데노신이라는 핵산 염기에 세 개의 인산기가 사슬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아데노신 삼인산이라고 불리며, 이 인산기 사이의 결합이 끊어질 때 에너지가 방출되어 세포의 모든 활동에 연료를 공급합니다. DNA와 RNA의 골격도 인산기와 당이 번갈아 연결된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서, 유전 정보를 담은 이 분자들도 인산기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칼슘이 인산기와 만나면 물에 녹지 않는 침전물을 형성한다는 것입니다. 인산칼슘의 용해도는 극도로 낮아서, 칼슘 이온과 인산 이온이 만나면 거의 즉시 고체 침전물이 형성됩니다. 우리 뼈와 치아를 구성하는 하이드록시아파타이트가 바로 인산칼슘의 일종인데, 뼈가 그토록 단단한 이유가 바로 인산칼슘의 이 불용성 때문입니다. 세포질에 칼슘이 많아지면, ATP와 DNA의 인산기가 칼슘과 결합하여 침전되기 시작합니다. 세포 안에서 뼈가 생기는 것과 같은 재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ATP가 세포 안에 밀리몰 수준으로 풍부하게 존재한다면, 100나노몰밖에 안 되는 칼슘과 만나서 침전되지 않을까요? 다행히 세포 내에는 마그네슘이 풍부하게 존재합니다. 세포질 마그네슘 농도는 약 0.5밀리몰에서 1밀리몰로, 칼슘보다 수천 배에서 1만 배 높습니다. ATP는 대부분 마그네슘과 결합한 마그네슘-ATP 형태로 안정화되어 있어서, 낮은 농도의 칼슘과는 쉽게 반응하지 않습니다. 마그네슘이 ATP를 보호하는 방패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칼슘 농도가 폭증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칼슘은 마그네슘보다 인산기에 대한 친화력이 더 높기 때문에, 칼슘 농도가 충분히 높아지면 마그네슘을 밀어내고 ATP와 결합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일단 칼슘이 ATP와 결합하면 불용성 침전물이 형성되어 ATP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이 왜 치명적일까요? ATP는 세포의 에너지 화폐입니다. 모든 생명 활동은 ATP를 소비합니다. 근육이 수축하려면 액틴과 미오신 사이의 결합을 풀고 다시 결합하는 과정에서 ATP가 필요하고, 단백질을 합성하려면 아미노산 하나를 연결할 때마다 ATP 네 분자에 해당하는 에너지가 필요하고, 신경이 신호를 보내려면 신경세포막의 이온 펌프를 가동하는 데 ATP가 필요합니다. 심지어 칼슘을 세포 밖으로 퍼내는 칼슘 펌프조차 ATP를 연료로 사용하므로, ATP가 고갈되면 칼슘 펌프도 멈추고, 칼슘 펌프가 멈추면 칼슘이 더 많이 유입되어 ATP를 더 많이 침전시키는 악순환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칼슘이 ATP의 인산기와 결합하여 침전되면, ATP를 더 이상 에너지원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세포의 에너지 시스템이 마비되는 것입니다. DNA와 RNA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이 분자들의 인산기 골격이 칼슘과 결합하여 구조가 왜곡되거나 침전되면, 유전자 발현 자체가 불가능해집니다. RNA 중합효소가 DNA를 읽지 못하고, 리보솜이 mRNA를 번역하지 못하면 세포는 더 이상 새로운 단백질을 만들 수 없습니다. 2019년에 발표된 중요한 연구는 이 과정을 분자 수준에서 상세히 밝혔습니다. 여러 미토콘드리아 연구기관에 따르면, 미토콘드리아 내부에 칼슘 인산염 과립이 형성되면 전자전달계의 복합체 I이 직접적으로 억제되어 ATP 합성률이 현저히 감소한다고 합니다. 칼슘 과부하가 세포의 발전소인 미토콘드리아를 직접 공격하는 것입니다.
칼슘의 독성은 인산염 침전에 그치지 않습니다. 단백질 표면에는 음전하를 띤 아미노산들이 전략적으로 분포해 있는데, 아스파트산과 글루탐산이 대표적입니다. 이 아미노산들의 곁사슬에는 카르복실기가 있어서 생리적 pH에서 음전하를 띠며, 이 음전하가 양전하를 띤 칼슘 이온을 끌어당깁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칼슘 이온은 이 부위에 일시적으로 결합했다가 떨어지면서 단백질의 구조를 바꾸고 이것이 신호로 작용합니다. 그러나 칼슘 농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칼슘이 단백질 표면에 과도하게 결합하면, 하나의 칼슘 이온이 두 개 이상의 단백질에 동시에 결합하여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하게 되고, 이로 인해 서로 다른 단백질들이 칼슘을 매개로 엉겨붙기 시작합니다. 단백질 응집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응집된 단백질은 정상적인 3차원 구조를 잃어버리고 기능을 상실합니다. 효소는 더 이상 화학 반응을 촉매하지 못하고, 구조 단백질은 세포의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며, 수용체 단백질은 신호를 감지하지 못합니다. 심한 경우 응집체가 세포 내 공간을 물리적으로 차지하여 다른 분자들의 이동을 방해하고, 소포체나 골지체 같은 세포 소기관의 기능을 마비시킵니다. 알츠하이머병에서 관찰되는 아밀로이드 플라크나 파킨슨병에서 관찰되는 루이소체가 바로 이런 단백질 응집의 결과물인데, 칼슘 과부하가 이러한 신경퇴행성 질환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가 최근 수십 년간 축적되어 온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세포막도 칼슘 과부하의 공격 대상이 됩니다. 세포막은 인지질 이중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인지질 분자의 머리 부분은 인산기를 포함하고 있어서 음전하를 띱니다. 정상적인 칼슘 농도에서는 칼슘 이온이 인지질 머리에 적절히 결합하여 오히려 막의 안정성에 기여합니다. 칼슘이 인지질들 사이에 다리를 놓아 막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칼슘 농도가 과도하게 높아지면, 칼슘이 인지질에 과다 결합하여 막의 유동성을 심하게 감소시킵니다. 세포막은 원래 액체처럼 유동적이어서 단백질들이 막 안에서 자유롭게 이동하고, 소포가 막과 융합하고 분리되는 것이 가능한데, 막이 딱딱해지면 이런 과정들이 모두 방해받습니다. 심한 경우 막에 구멍이 뚫리거나 막 자체가 물리적으로 파열됩니다. 세포막이 파괴되면 세포는 죽습니다. 세포 내용물이 밖으로 쏟아져 나오고, 이렇게 방출된 세포 내용물들은 주변 세포들에게 위험 신호를 보내 염증 반응을 촉발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사고사가 아닙니다. 칼슘 과부하는 세포에게 이제 죽을 때가 되었다는 신호, 즉 세포예정사인 아포토시스의 방아쇠를 당기기도 합니다. 미토콘드리아에 칼슘이 과다 축적되면 미토콘드리아 막에 구멍이 열리면서 시토크롬 c라는 단백질이 방출되고, 이것이 카스파제라는 효소 연쇄반응을 촉발하여 세포가 스스로를 분해하는 프로그램이 작동합니다. 칼슘은 생명의 신호이면서 동시에 죽음의 신호입니다. 이 이중성이 칼슘의 본질이며, 이 이중성이야말로 칼슘이 생명에서 차지하는 독특한 위치를 설명해 줍니다.
칼슘 독성이 가장 극적으로 나타나는 곳은 뇌입니다. 뇌졸중이 발생하면 혈관이 막히거나 터져서 뇌의 일부 영역에 혈액 공급이 중단됩니다. 산소와 포도당이 부족해진 신경세포들은 미토콘드리아에서 ATP를 만들지 못하고, ATP가 없으면 세포막의 칼슘 펌프가 작동을 멈춥니다. 펌프가 멈추면 칼슘이 서서히 세포 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합니다. 동시에 에너지 부족으로 고통받는 손상된 세포에서 글루타메이트라는 신경전달물질이 과다하게 방출됩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글루타메이트는 흥분성 신경전달물질로서 신경세포를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과다하게 방출되면 재앙을 일으킵니다. 글루타메이트는 인접 신경세포의 NMDA 수용체를 활성화시키는데, NMDA 수용체는 글루타메이트가 결합하면 열리는 이온 통로이면서 동시에 칼슘 통로이기도 합니다. 활성화된 NMDA 수용체를 통해 칼슘이 대량으로 유입됩니다. 그러나 이 세포들도 이미 ATP가 부족하여 유입된 칼슘을 퍼낼 수 없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칼슘 과부하는 연쇄 반응을 일으킵니다. 미토콘드리아가 칼슘을 흡수하다가 과부하로 손상되고, 손상된 미토콘드리아에서 활성산소종이 생성되어 세포 내 분자들을 공격하고, 결국 세포가 죽습니다. 죽은 세포에서 다시 글루타메이트가 방출되어 주변 세포들을 공격합니다. 여러 신경과학 연구기관에서는 이 현상을 흥분독성이라고 부르며, 뇌졸중 발생 후 수 시간에서 수일에 걸쳐 신경세포가 대량으로 죽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합니다. 뇌졸중 치료에서 시간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 흥분독성 연쇄반응을 막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역설의 해소: 독이 신호가 되다
여기서 역설이 등장합니다. 칼슘이 이토록 위험하다면, 세포는 왜 칼슘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을까요? 세포막에서 칼슘 통로를 모두 없애버리면 안 될까요? 진화는 수십억 년이라는 상상하기 어려운 시간 동안 무수한 변이를 시험해 왔는데, 왜 칼슘 통로를 완전히 제거한 생명체는 단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을까요? 그렇게 할 수 없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칼슘이 위험하기 때문에 완벽한 신호 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독이었기 때문에 약이 될 수 있었고, 위험이었기 때문에 기회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생명이 발견한 지혜이며, 이 역설을 이해하는 것이 칼슘의 본질을 이해하는 핵심입니다.
좋은 신호 시스템은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할까요? 라디오 방송을 예로 들어 봅시다. 첫째, 방송이 없을 때는 완전히 조용해야 합니다. 배경 잡음이 있으면 안 됩니다. 치지직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리면 실제 방송이 시작되었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둘째, 방송이 시작되면 명확하게 감지되어야 합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배경 잡음에 묻혀서 들리지 않으면 방송의 의미가 없습니다. 셋째, 방송이 끝나면 빠르게 다시 조용해져야 합니다. 이전 방송 내용이 계속 울려 퍼지면 다음 방송을 들을 수 없습니다. 통신공학에서는 이것을 신호 대 잡음비라고 부르는데, 신호의 세기가 잡음의 세기에 비해 클수록 통신의 품질이 좋아집니다. 칼슘은 이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만족합니다. 그리고 칼슘이 이 조건들을 만족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칼슘의 독성 때문입니다.
세포질 칼슘 농도가 100나노몰로 유지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세포 밖의 농도가 1밀리몰에서 2밀리몰이라면, 농도 차이가 1만 배에서 2만 배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구동력입니다. 높이가 수백 미터인 댐의 수문을 열면 물이 엄청난 힘으로 쏟아져 내리듯, 세포막의 칼슘 통로가 열리는 순간 칼슘이 급격히 세포 안으로 밀려들어옵니다. 통로 하나가 열리면 그 주변의 국소 농도가 빠르게 상승하고, 통로가 닫히면 칼슘 펌프가 즉시 칼슘을 퍼내어 농도가 다시 낮아집니다. 여러 시냅스 연구기관에 따르면 시냅스 말단에서 칼슘 통로가 열리면 통로 바로 옆, 반경 수십 나노미터 이내의 공간에서 칼슘 농도가 순식간에 10마이크로몰에서 100마이크로몰까지 치솟는다고 합니다. 배경 잡음인 100나노몰과 신호인 수십 마이크로몰의 차이가 100배에서 1000배에 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호 대 잡음비가 극도로 높다는 의미입니다. 신호가 왔는지 안 왔는지 헷갈릴 일이 전혀 없습니다. 만약 세포질 칼슘 농도가 1마이크로몰이었다면 어땠을까요? 그러면 신호가 와서 농도가 10마이크로몰이 되어도 차이가 10배밖에 안 됩니다. 생물학적 시스템에는 항상 노이즈가 있기 때문에, 10배 차이로는 신호인지 잡음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세포가 그토록 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칼슘을 배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칼슘이 독이기 때문에 배제해야 했고, 철저하게 배제했기 때문에 완벽한 신호 시스템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칼슘의 화학적 특성도 신호전달에 이상적입니다. 칼슘 이온의 이온 반경은 약 1.00옹스트롬인데, 이 크기는 단백질의 칼슘 결합 부위에 딱 맞습니다. 주기율표에서 칼슘과 같은 2족에 속하는 다른 원소들을 보면, 마그네슘은 이온 반경이 0.72옹스트롬으로 너무 작고, 스트론튬은 1.18옹스트롬으로 조금 크고, 바륨은 1.35옹스트롬으로 너무 큽니다. 단백질의 칼슘 결합 부위는 수억 년의 진화를 거쳐 칼슘에 최적화되어 있어서, 다른 이온들은 제대로 결합하지 못하거나 결합하더라도 올바른 구조 변화를 유도하지 못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결합 속도입니다. 여러 생화학 연구기관에 따르면 칼슘은 마그네슘보다 단백질에 약 100배 빠르게 결합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칼슘의 수화껍질, 즉 칼슘 이온을 둘러싸고 있는 물 분자층의 특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마그네슘은 이온 반경이 작아서 전하 밀도가 높고 물 분자를 강하게 붙잡고 있어서 수화껍질을 벗기가 어렵습니다.
반면 칼슘은 이온 반경이 더 커서 전하 밀도가 낮고 수화껍질을 더 쉽게 벗을 수 있습니다. 빠르게 결합하고, 빠르게 떨어집니다. 이 빠른 결합과 해리 속도 덕분에 밀리초 단위의 신호전달이 가능합니다. 신경세포에서 시냅스 전달이 일어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1밀리초입니다. 전기 신호가 축삭 말단에 도달하고, 칼슘 통로가 열리고, 칼슘이 유입되고, 칼모듈린에 결합하고, 시냅스 소포가 세포막과 융합하고, 신경전달물질이 방출되는 이 모든 과정이 1밀리초 안에 일어나야 합니다. 칼슘의 빠른 결합 속도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칼슘은 또한 매우 다재다능합니다. 칼슘의 배위수는 6에서 9 사이로, 동시에 6개에서 9개의 산소 원자와 결합할 수 있습니다. 이 유연한 결합 방식 덕분에 칼슘은 200종 이상의 서로 다른 단백질과 결합할 수 있습니다. 마그네슘은 배위수가 6으로 고정되어 있어서 결합할 수 있는 단백질의 종류가 제한적입니다. 칼슘 결합 단백질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칼모듈린입니다. 이 작은 단백질은 148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아령 모양의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칼모듈린에는 네 개의 칼슘 결합 부위가 있어서 최대 네 개의 칼슘 이온과 결합할 수 있는데, 칼슘이 결합하면 칼모듈린의 구조가 극적으로 변합니다. 마치 손을 펴고 있다가 주먹을 쥐는 것처럼, 칼모듈린은 칼슘과 결합하면 소수성 표면을 노출시키고 이 표면이 다른 단백질과 결합합니다. 구조가 변한 칼모듈린은 100종 이상의 다른 단백질을 활성화시킬 수 있습니다. 근육 수축을 일으키는 미오신 경쇄 키나아제, 신경세포의 시냅스 가소성에 관여하는 칼슘-칼모듈린 의존성 키나아제 II, 세포 내 두 번째 신호전달물질인 사이클릭 AMP를 만드는 아데닐산 고리화효소, 혈관을 확장시키는 산화질소 합성효소. 세포의 거의 모든 기능이 칼모듈린을 경유합니다. 그리고 칼모듈린의 스위치를 켜는 것이 바로 칼슘입니다. 칼슘은 세포라는 거대한 공장의 마스터 스위치입니다.
38억 년의 보존: 진화가 증명하는 중요성
세포질 칼슘 농도 약 100나노몰이라는 숫자가 얼마나 보편적인지 살펴봅시다. 대장균의 세포질 자유 칼슘 농도는 약 100나노몰입니다. 대장균은 원핵생물로, 핵막이 없고 미토콘드리아도 없는 단순한 구조의 세포입니다. 약 38억 년 전 최초의 세포가 출현했을 때 그 세포는 아마도 대장균과 비슷한 모습이었을 것이며, 대장균은 그때의 형태를 가장 잘 유지하고 있는 생물 중 하나입니다. 효모도 마찬가지입니다. 효모는 진핵생물이어서 핵막과 미토콘드리아를 가지고 있지만, 약 10억 년 전 다세포 생물의 조상과 갈라져 나온 단세포 생물입니다. 효모의 세포질 칼슘 농도도 약 100나노몰에서 200나노몰입니다. 식물 세포를 보아도 그렇고, 곤충 세포를 보아도 그렇고, 물고기 세포를 보아도 그렇고, 포유류 세포를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이 좁은 범위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인간의 신경세포와 근육세포와 간세포와 면역세포는 기능이 완전히 다릅니다. 신경세포는 전기 신호를 전달하고, 근육세포는 수축하여 힘을 내고, 간세포는 해독 작용과 대사를 담당하고, 면역세포는 병원체와 싸웁니다. 그러나 이 모든 세포의 기저 칼슘 농도는 약 100나노몰로 같습니다. 심해 열수구의 극한 환경에서 400도에 가까운 물 옆에서 사는 고세균도, 남극 빙하 아래 영하 2도의 바닷물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도, 사하라 사막의 뜨거운 모래에서 견디는 딱정벌레도, 아마존 열대우림 꼭대기에서 나는 벌새도, 모두 같은 숫자를 공유합니다.
진화생물학의 관점에서 이러한 보편적 보존이 의미하는 바는 심오합니다. 어떤 특성이 38억 년간 거의 변하지 않고 유지되었다면, 그것은 매우 강력한 선택압이 존재했음을 의미합니다. 선택압이란 특정 특성을 가진 개체가 그렇지 않은 개체보다 생존과 번식에서 유리하거나 불리하여, 세대를 거듭하면서 그 특성의 빈도가 변하는 힘을 말합니다. 세포질 칼슘 농도를 100나노몰 근처로 유지하지 못한 개체는 생존과 번식에서 불리했고, 세대를 거듭하면서 도태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관찰하는 모든 생명체는 이 특성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역사에서 이렇게 오래 보존된 특성은 많지 않습니다. 유전 암호가 그렇습니다. 박테리아에서 인간까지 모든 생명체는 같은 유전 암호를 사용하여 DNA의 염기 서열을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로 번역합니다. ATG는 메티오닌을 지정하고, TGG는 트립토판을 지정하고, TAA는 정지 코돈입니다. 예외가 거의 없습니다. ATP가 에너지 화폐로 사용되는 것도 그렇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ATP의 인산기 결합 에너지를 이용하여 생명 활동을 영위합니다. 그리고 세포질 칼슘 농도가 그렇습니다. 이것들은 생명의 가장 근본적인 설계 원리이며, 생명이 생명이기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세포질 칼슘 농도가 너무 높았던 생명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앞서 살펴본 대로 ATP가 침전되어 에너지 시스템이 마비되고, 단백질이 응집하여 기능을 잃고, 세포막이 딱딱해지다가 파괴되어 죽었을 것입니다. 이런 개체들은 성체로 자라지 못하고 죽거나, 성체가 되더라도 자손을 남기기 전에 죽었을 것입니다. 반대로 칼슘 농도가 너무 낮았던 생명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칼슘 신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근육을 수축시키지 못하고, 신경 신호를 보내지 못하고, 세포 분열을 조절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포식자로부터 도망치지 못하고, 먹이를 잡지 못하고, 번식하지 못하고 죽었을 것입니다.
약 100나노몰이라는 숫자는 독성과 신호전달 사이의 최적점입니다. 너무 높으면 독으로 죽고, 너무 낮으면 기능하지 못해 죽습니다. 그 정확한 균형점, 칼슘의 위험을 피하면서 칼슘의 이점을 누릴 수 있는 딱 그 지점이 100나노몰 근처입니다. 이 최적점을 찾아낸 생명체만이 살아남았고, 그 후손이 오늘날 지구상의 모든 생명입니다. 이제 우리는 중요한 결론에 도달합니다. 세포질 칼슘 농도를 약 100나노몰로 유지하는 능력, 즉 칼슘 제어 능력은 생명의 가장 근본적인 능력 중 하나입니다. 이 능력이 없으면 세포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칼슘 제어 능력은 진화적 적합도의 핵심 요소입니다. 칼슘을 잘 제어하는 개체가 더 잘 살아남고, 더 많이 번식합니다. 그리고 진화사의 주요 전환점마다, 이 칼슘 제어 능력이 새로운 방식으로 혁신되었습니다.
결론: 숫자 너머의 의미
우리는 이 장에서 하나의 숫자, 100나노몰의 의미를 탐구했습니다. 이 숫자는 단순한 생화학적 상수가 아닙니다. 38억 년 진화의 산물입니다. 칼슘이 독이기 때문에, 세포는 칼슘을 배제해야 했습니다. ATP를 침전시키고, 단백질을 응집시키고, 세포막을 파괴하고, 결국 세포를 죽이는 이 위험한 이온을 세포는 막대한 에너지를 투입하여 밖으로 퍼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철저한 배제가 칼슘을 완벽한 신호 분자로 만들었습니다. 낮은 기저 농도가 높은 구동력을 제공하고, 높은 구동력이 명확한 신호를 만들어냅니다. 독이 약이 되고, 위험이 기회가 되는 역설. 이것이 생명의 지혜입니다.
모든 세포가 이 숫자를 공유한다는 사실은, 칼슘 제어가 생명의 가장 근본적인 능력임을 말해줍니다. 유전 암호나 ATP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칼슘 제어는 생명의 정의 그 자체에 가깝습니다. 이 능력 없이는 세포가 존재할 수 없고, 생명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세포 내 칼슘 농도를 100나노몰로 유지하는 것은 생명의 기본 조건입니다. 모든 세포가 이것을 할 수 있습니다. 대장균도 할 수 있고, 효모도 할 수 있습니다. 진화가 도약하려면, 칼슘을 더 창의적으로 사용해야 했습니다. 다음 장에서는 캄브리아기 대폭발을 살펴봅니다. 5억 4천만 년 전, 생명은 칼슘을 세포 안에서 관리하는 수준을 넘어, 칼슘으로 껍질과 골격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세포 내 칼슘 제어 능력이 세포 밖으로 확장된 것입니다. 위험한 독을 밖으로 밀어내던 시스템이, 그 독을 단단한 갑옷으로 바꾸는 시스템으로 진화한 것입니다. 칼슘 저장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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