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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서재2026.07.0425분 읽기조회 10

경제 위기는 하루아침에 오지 않는다

세 갈래 방아쇠가 한 깔때기로 모이는 5년에서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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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DMC Lab 연구소
DTDMC 연구소
이 글은 『물리경제학 시대선언』(윤종원·윤소리·윤준) 제9장 전문입니다. 저자의 물리경제학 가설을 담은 학술적 서술이며, 본문·수치·인용은 원고 그대로입니다.
깔때기론: 세 트리거가 DIAH로 수렴한다
깔때기론: 세 트리거가 DIAH로 수렴한다

앞에서 살펴본 DTDMC, 곧 5단계 붕괴 경로 법칙은 무너짐의 5단계를 정리한 법칙입니다. 요인, 시작, 봉쇄, 발현, 궤멸. 이 5단계가 별과 강과 사람의 몸과 한 나라의 경제에서 같은 차례로 작동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차례가 한국과 미국의 30년 자료에서 한 번도 어긋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이제 그 5단계 가운데 가장 1단계인 요인 단계를 본격적으로 들여다봅니다. 첫 단계가 가장 길고, 가장 조용하며, 가장 결정적인 단계이기 때문입니다.

일상에는 "갑자기"라는 말로 시작되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한 직장인이 어느 날 출근길에 가슴이 갑자기 답답해 응급실로 실려 가는 일, 한 자영업자가 어느 분기 매출이 갑자기 절반으로 떨어지는 일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5년 전 건강검진 기록을 들여다보면, 그 가게의 3년 치 매출 장부를 펼쳐 보면 거의 어김없이 같은 사실이 드러납니다. 그 "갑자기"는 사실 5년에서 10년에 걸쳐 한 방향으로 누적되어 온 결과였다는 것입니다. 안에서 무언가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는데 겉에서 보이지 않았을 뿐입니다.

경영진의 판단 오류가 장기적으로 누적되고, 그 누적 위에서 잘못된 지출 습관이 자라나며, 그 끝에서 갑작스런 재난이 도화선으로 통과합니다. 1차 누적이 깊어진 터에 2차가 자라고, 2차가 충분히 자란 끝에 3차가 급성으로 통과하는 모양입니다. 세 차수는 따로 진행되는 갈래가 아니라 시간 순서로 안으로 밀려 들어가는 누적입니다. 이 누적의 끝에서 압력이 모이는 곳은 정해져 있습니다. 소득양극화, 비용폭발, 물가폭등, 돈맥경화의 4가지 상태입니다. 입구는 1차에서 시작해 2차로 좁아지고 3차에서 마지막으로 통과하는 깔때기 모양이고, 출구는 4가지 상태로 모입니다. 이 책은 이 누적 구조를 깔때기론이라 부릅니다.

아래에서는 깔때기론을 차례로 풀어 보겠습니다. 먼저 깔때기론이 정확히 무엇인지 정리한 뒤, 1차 판단 오류, 2차 잘못된 지출 습관, 3차 갑작스런 재난의 세 트리거를 시간 순서대로 풀이합니다. 이어 깔때기 출구의 DIAH 네 트리거를 본격 풀이하고, 누적에 걸리는 시간이 왜 5년에서 10년인지 그 까닭을 짚습니다. 마지막으로 깔때기를 알면 일상에서 무엇이 보이는지로 글을 닫습니다.

깔때기론이란 무엇인가

주방에서 깔때기를 한 번쯤 써 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페트병에 식용유를 옮겨 담을 때, 작은 입구를 가진 병에 가루를 부을 때 깔때기를 씁니다. 깔때기의 모양은 단순합니다. 위는 넓고 아래는 좁습니다. 다양한 모양으로 부어 넣어도 결국 좁은 출구를 통해 정해진 한 방향으로 흘러 나옵니다. 입구의 다양성이 출구에서 단일성으로 모이는 모양, 이것이 깔때기의 본질입니다.

한 나라의 경제에서 위기가 만들어지는 모양도 정확히 깔때기를 닮았습니다. 입구로 들어오는 압력은 시간 순서를 따라 안으로 밀려 들어갑니다. 가장 먼저 들어가는 것은 경영진의 판단 오류입니다. 정부의 정책 결정자, 기업의 경영진, 가계의 가장이 내리는 큰 방향의 판단이 잘못 굳어진 채로 5년에서 10년 동안 시스템 안쪽에 누적됩니다. 그 누적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 그 위에서 2번째 트리거가 자라납니다. 잘못된 지출 습관입니다. 한 가계, 한 기업, 한 나라가 매일 내리는 작은 지출 결정이 잘못된 방향으로 굳어집니다. 이 2번째 누적이 깊어진 끝에서 마지막으로 3번째 트리거가 도화선으로 통과합니다. 갑작스런 재난이나 손실입니다. 세 차수는 따로 진행되는 갈래가 아니라 시간 순서를 따라 안으로 밀려 들어가는 깔때기 구조입니다.

그 끝에서 압력은 4가지 상태로 모입니다. 소득양극화, 비용폭발, 물가폭등, 돈맥경화. 영문 첫 글자를 묶어 DIAH라고 부르며, 의학 도메인의 결핍·염증·산증·저산소와 1대1로 대응합니다. 매개체가 칼슘에서 현금으로 바뀌었을 뿐 출구의 구조 자체는 그대로 보존됩니다. 아래의 표는 깔때기의 전체 구조를 한 곳에 모은 것입니다. 1·2·3차 트리거와 DIAH 출구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한눈에 정리했습니다.

깔때기론 1·2·3차 트리거와 DIAH 출구

차수이름본질
1차 트리거근본 트리거, 경영진의 판단 오류장기적으로 증폭하는 누적. 5~10년 단위로 시스템 안쪽에 자라남
2차 트리거생활습관 트리거, 잘못된 지출 습관1차 누적 위에서 자라나는 행동 습관. 매일 조금씩 깔때기를 넓힘
3차 트리거급성 사건 트리거, 갑작스런 재난·손실2차 누적의 끝에서 도화선으로 작용. 갑자기 통과
출구DIAH 4가지 트리거소득양극화·비용폭발·물가폭등·돈맥경화로 모이는 4가지 상태

1차 근본 트리거, 경영진의 판단 오류

깔때기에 가장 먼저 들어가는 것은 1차 근본 트리거입니다. 인체에서는 마음의 상태이고, 한 나라의 경제에서는 경영진의 판단 오류입니다. 경영진이라는 말이 좁은 뜻으로는 기업 경영진을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더 넓게 정부의 정책 결정자, 기업의 임원, 가계의 가장까지 모두 포함합니다. 한 시스템의 큰 방향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그 판단이 굳어 가는 누적입니다. 정론은 이 트리거의 역할을 "장기적으로 증폭하는 누적"이라 정리합니다. 매일 작동하지는 않지만 작동할 때마다 시스템의 큰 방향을 한쪽으로 기울이고, 5년에서 10년에 걸쳐 그 영향력이 점점 커집니다.

일상에서 떠올리면 분명합니다. 한 회사의 경영진이 10년 전 시장이 좋았던 시절에 "우리 사업 모형은 영원히 통한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합시다. 그 판단이 굳어진 채로 시장이 바뀌어도 같은 모형을 고집합니다. 직원들은 "이 모형은 이제 안 된다"고 말하고 싶어도 경영진의 결정 앞에서는 입을 떼지 못합니다. 5년이 흐르고 10년이 흐르는 사이 회사 안쪽에 "못 바꾸는 모형"이 굳어집니다. 한 가정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부모가 30년 전의 양육 방식이 옳다고 굳게 믿고 같은 방식을 자녀에게 적용하면, 시대가 바뀌어도 그 판단이 가족 안쪽에 균열을 누적시킵니다.

한 나라의 경제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1980년대의 한국은 정부 주도로 산업을 키우는 모형으로 고도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정부가 산업을 지정하고 은행이 자금을 공급하고 기업이 공장을 지어 수출하는 흐름이었습니다. 이 모형이 1980년대까지 잘 작동했다는 사실 자체가 1990년대 정책 결정자들의 판단을 굳혀 놓았습니다. 1990년대에 세계 금융시장이 빠르게 자유화되어 기업이 직접 단기 외환을 빌릴 수 있게 되었는데도 정책 결정자들의 판단은 여전히 1980년대 모형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우리 모형은 통한다"는 판단이 7년 동안 누적되는 사이에 단기 외화 차입의 위험이 시스템 안쪽에 자라났습니다. 미국 2001~2007년의 금융 자유화 모형, 일본 1985~1991년의 토지 담보 대출 모형도 같은 모양으로 굳어졌습니다.

세 사례는 일견 다른 위기처럼 보입니다. 한국은 외환 위기, 미국은 주택 거품과 금융위기, 일본은 자산 거품 붕괴였습니다. 그러나 1차 근본 트리거의 관점에서 보면 정확히 같은 모양입니다. 한 시대에 잘 작동했던 모형을 다음 시대 정책 결정자들이 "우리 판단은 옳다"는 자세로 그대로 가져갔습니다. 그 판단이 5~10년 동안 시스템 안쪽에 누적되었고, 그 누적이 다음 차수의 트리거가 자라날 토양을 만들었습니다.

1차 근본 트리거, 한국·미국·일본의 판단 오류 사례

나라/시기굳어진 옛 판단따라가지 못한 새 위험
한국 1990–1996정부 주도, 은행 매개 산업 자금 공급은 통한다기업의 직접 단기 외화 차입과 외환 위험
미국 2001–20071980년대 금융 자유화는 옳다복잡한 주택 담보 대출 상품의 위험
일본 1985–1991토지 담보 대출 모형은 안전하다자산 가격 거품과 신용 팽창의 위험

2차 생활습관 트리거, 잘못된 지출 습관

1차 판단 오류가 충분히 누적된 지반 위에서 2차 생활습관 트리거가 자라납니다. 인체에서는 행동의 습관이고, 한 나라의 경제에서는 잘못된 지출 습관입니다. 정론은 이 트리거의 역할을 "매일 넓힘"으로 정리합니다. 1차가 장기적으로 한 번씩 굳어지는 큰 판단이라면, 2차는 매일매일 작게 결정되는 지출의 누적입니다. 매일 작동하기 때문에 누적의 속도가 빠르고, 1차 누적 위에 짧게는 1~2년, 길게는 5년 안에 깔때기를 본격적으로 넓혀 놓습니다.

이 차수의 핵심을 가장 먼저 짚은 사람이 미국의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입니다. 민스키는 1986년 자신의 책 '불안정한 경제의 안정화'에서 안정된 시기 자체가 위기의 씨앗이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평소에는 위험을 두려워하던 사람도 별일 없이 시간이 흐르면 점점 그 위험에 익숙해진다는 것입니다. 한 번 해 봤더니 괜찮으니 2번째도 해 보고, 2번째도 괜찮으니 3번째에는 더 큰 규모로 해 봅니다. 처음에 작았던 위험이 매일 조금씩 커지고, 결국 어느 선을 넘는 순간 시스템 전체가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일상에서 떠올려 보겠습니다. 한 직장인이 처음으로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습니다. 처음 한도는 500만 원이고 처음에는 무서워서 잘 안 씁니다. 그러다 어느 달 한 번 써 봤는데 다음 달 월급으로 바로 갚으니 별일이 없습니다. 2번째 달에 또 씁니다. 또 별일이 없습니다. 그러는 사이 마이너스 통장은 "비상시에만 쓰는 도구"에서 "매월 잠깐씩 쓰는 도구"로 익숙해집니다. 1년 뒤에는 한도를 1,000만 원, 또 1년 뒤에는 2,000만 원으로 늘립니다. 본인은 "이 정도는 다들 쓴다"고 합니다. 그러나 5년 사이에 가계 안에 빚의 누적이 매일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같은 일이 한 나라의 경제 단위에서 벌어집니다. 미국의 2001년부터 2007년까지가 정확히 그런 시기였습니다. 1980년대 금융 자유화 모형이 옳다는 1차 판단 누적 위에서 2001년 이후 연방준비제도가 기준 금리를 빠르게 내리자 가계와 은행의 지출 습관이 점점 위험으로 기울어졌습니다. 처음에는 신용이 좋은 사람들만 주택 담보 대출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별일이 없으니 신용이 보통인 사람도, 또 별일이 없으니 신용이 좋지 않은 사람에게도 대출이 나갔습니다. 신용이 좋지 않은 사람에게 나간 대출을 서브프라임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는 사이 미국의 가계 부채는 6년에 걸쳐 매일 누적되었고, 일본도 1985년 이후 7년 동안 토지 담보 대출의 잘못된 지출 습관이 같은 모양으로 누적되었습니다. 두 사례 모두 1차 판단 오류가 굳혀 놓은 토양 위에서 2차 잘못된 지출 습관이 매일 깔때기를 넓힌 결과입니다.

2차 생활습관 트리거의 누적 패턴

단계지출 습관결과
초기 (1차 누적 위)처음에는 위험을 두려워하며 조심스럽게 시도별일이 없으면 익숙함이 형성됨
중기 (1~3년)익숙해진 위험을 매일 더 큰 규모로 반복한 사람의 지출 습관이 다른 사람에게 퍼짐
후기 (3~5년)"별일 없으니 괜찮다"는 지출이 시장 전체로 확산1차 누적 위에서 깔때기가 본격적으로 넓어짐

3차 급성 사건 트리거, 갑작스런 재난·손실

1차 판단 오류가 5~10년 굳어 있고 그 위에서 2차 잘못된 지출 습관이 매일 깔때기를 넓혀 놓은 시점에서, 마지막으로 3차 급성 사건 트리거가 통과합니다. 인체에서는 갑작스런 부상이나 감염, 곧 몸의 사건이고, 한 나라의 경제에서는 갑작스런 재난이나 손실입니다. 정론은 이 트리거의 역할을 "갑자기 통과"로 정리합니다. 1·2차와 달리 3차는 누적되는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시스템에 더해지고, 그 즉시 깔때기 출구를 통과시키는 도화선 역할을 합니다.

일상에서 떠올리면 분명합니다. 한 가정이 평소에 큰 어려움 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부모님이 큰 병으로 입원합니다. 이 사건은 가족 누구의 잘못이 아니고 평소의 지출 습관과도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이 1·2차의 누적이 깊어진 가정에 들어가면 가정 전체를 다음 단계로 통과시키는 도화선이 됩니다. 한 나라의 경제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3차 사건은 크게 세 종류로 나뉩니다. 1973년 1차 석유 파동이나 2010년대 후반의 미중 무역 분쟁 같은 지정학적 사건, 1990년대 후반의 인터넷이나 2010년대 후반의 인공지능 같은 기술 변화, 2020년 코로나 같은 자연재해와 전염병입니다. 어느 시민의 잘못도 아니고 막을 수 있는 종류도 아닙니다.

3차 사건 트리거의 가장 결정적인 면은 단독으로는 거의 위기를 만들어 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1973년 석유 파동 때 모든 나라의 경제가 흔들렸지만 어느 나라도 곧바로 무너지지 않았고, 2020년 코로나 충격도 모든 나라에 동시에 닥쳤지만 시스템 종료까지 간 나라는 거의 없었습니다. 3차 사건이 위기로 진행하려면 그 시스템 안에 이미 1차와 2차 누적이 깊어져 있어야 합니다. 1997년 한국 외환위기에서 바로 그 일이 벌어졌습니다. 1980년대 정부 주도 모형이 옳다는 1차 판단 오류가 7년 굳어진 단계에서 단기 외화 차입의 2차 잘못된 지출 습관이 매일 누적되어 있었고, 그 위에 1997년 동남아시아 외환위기라는 3차 사건이 마지막으로 통과한 것입니다. 3차 사건의 충격 크기는 이미 시스템 안에 1·2차가 얼마나 누적되어 있었는지로 정해집니다. 깔때기의 1·2·3차가 따로 작동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시간 순서로 함께 작동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깔때기 출구, DIAH 4가지 트리거로 수렴

1·2·3차 트리거를 차례로 짚어 보았으니, 이제 깔때기 출구로 시선을 옮기겠습니다. 시간 순서로 안으로 밀려 들어간 누적이 결국 어디로 모이는가. 한 나라의 경제 안에서 다음 단계, 곧 시작 단계로 넘어가게 만드는 출구의 모양은 정해져 있습니다. 의학 도메인에서 사람의 몸이 무너질 때 깔때기 출구는 결핍(D, Deficiency), 염증(I, Inflammation), 산증(A, Acidosis), 저산소(H, Hypoxia)의 4가지 트리거이고, 영문 첫 글자를 묶어 DIAH라고 부릅니다. 한 나라의 경제로 옮기면 영문 코드는 그대로 D·I·A·H이고 한글 명칭은 소득양극화, 비용폭발, 물가폭등, 돈맥경화입니다. 매개체가 칼슘에서 현금으로 바뀌었을 뿐 출구의 구조 자체는 그대로 보존됩니다.

DIAH 4가지가 가지는 가장 결정적인 면은 이자(미세석회)를 만드는 조건이라는 점입니다. 결핍(D)은 자원이 말단에 닿지 않으니 빌려서 사는 상태를 만들고, 비용폭발(I)은 비용이 소득보다 커지니 비상 자원을 꺼내는 상태를 만들며, 물가폭등(A)은 화폐 가치가 떨어지니 더 빌려야 같은 걸 사는 상태를 만들고, 돈맥경화(H)는 순환이 막혀 단기 고금리로 빌리는 상태를 만듭니다. 네 상태가 함께 작동하면 가계와 기업과 정부 모두가 대출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 대출에서 이자가 발생하고, 그 이자가 좁아진 길목에서 굳어 미세석회가 됩니다. DIAH가 깔때기 출구라는 정의의 실제 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1번째 출구는 소득양극화(D)입니다. 자산과 소득이 한쪽으로 쏠려 다른 쪽이 굶는 상태입니다. 한 가정 안에서 한 사람의 카드값에 다른 가족 모두의 생활비가 묶이는 모습을 떠올리면 됩니다. 가족 안에 자원이 분명히 있는데도 한쪽으로 쏠려 다른 쪽이 굶습니다. 한 나라 단위에서는 상위 10퍼센트가 전체 자산의 절반 이상을 가지고 하위 50퍼센트는 거의 자산이 없는 상태입니다. 정론은 이 출구의 깔때기 구조를 "구조요인 → 확산요인 → 심화요인의 3단계 수렴"으로 정리합니다. 자산 편중이 실질소득 정체를 부르고, 그것이 소비 양극화로 이어지며, 다시 기회 상실과 일자리 약화로 굳어집니다.

2번째 출구는 비용폭발(I)입니다. 이자, 세금, 의료비, 교육비, 주거비 같은 비용이 한꺼번에 동시 다발적으로 오르는 상태입니다. 한 가게의 사정으로 떠올리면 분명합니다. 어느 해 임대료, 직원 월급, 재료비, 카드 수수료가 동시에 오르면 가게 운영자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한 비용을 줄이려 해도 다른 비용이 또 오르기 때문입니다. 정론은 이 출구의 깔때기 구조를 "병렬 트리거"로 정리합니다. 이자, 세금, 의료, 교육·주거가 동시 다발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어느 한 갈래만 막아도 다른 갈래가 곧바로 누적을 이어갑니다. 3번째 출구는 물가폭등(A)입니다. 화폐 가치가 떨어져 같은 물건을 사는 데 더 많은 돈이 필요해진 상태입니다. 같은 양의 노동으로 같은 월급을 받아도 살 수 있는 물건이 줄어들고, 부족한 만큼은 빌려서 채워야 합니다. 정론은 이 출구의 깔때기 구조를 "순환 트리거"로 정리합니다. 원자재 가격이 공급망을 흔들고, 공급망이 임금을 흔들고, 다시 환율을 흔드는 피드백 루프가 작동합니다.

4번째 출구는 돈맥경화(H)입니다. 시중에 돈이 분명히 있는데 정작 필요한 곳에 도달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사람의 몸에서 산소가 폐에는 도달했는데 미세혈관 너머의 세포까지 가지 못하는 상태와 같은 모양입니다. 정부 발표로는 "시중에 돈이 충분히 풀렸다"고 하는데 정작 동네 가게의 통장에는 매출이 더 줄어드는 상황이 그것입니다. 큰 자금 경로에는 돈이 풍부한데 작은 자금 경로에는 도달하지 못합니다. 정론은 이 출구의 깔때기 구조를 "인과 연쇄"로 정리합니다. 1차 신용경색이 2차 연쇄부도를 부르고, 그것이 3차 현금확보전을 부르며, 결과로 고용 실종이 따라옵니다. 4가지 출구가 함께 작동하면 깔때기에서 가장 강한 압력이 형성되고, 그 시점이 5단계 가운데 2단계인 시작 단계로 넘어가는 시점입니다.

DIAH 네 트리거의 의학·경제 1대1 대응과 각 트리거의 깔때기 구조

코드의학 도메인 (사람의 몸)경제 도메인 (한 나라)깔때기 구조
D 소득양극화비타민 D·칼슘·미네랄 부족자산과 소득이 한쪽으로 쏠려 다른 쪽이 굶는 상태구조요인 → 확산요인 → 심화요인 (3단계 수렴)
I 비용폭발만성 저강도 염증이자·세금·의료·교육·주거비 동시 상승병렬 트리거 (동시 다발)
A 물가폭등조직 내 산성도 증가화폐 가치가 떨어져 같은 물건에 더 많은 돈이 필요한 상태순환 트리거 (피드백 루프)
H 돈맥경화조직에 산소 공급 부족시중에 돈이 있는데 필요한 곳에 도달하지 못하는 상태1차 신용경색 → 2차 연쇄부도 → 3차 현금확보전 (인과 연쇄)

누적의 시간, 왜 5년에서 10년인가

깔때기의 입구와 출구를 모두 짚었으니 이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더 짚고 가야 합니다. 1·2·3차 트리거가 차례로 누적되어 출구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거의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한국 1990년부터 1996년까지 7년, 미국 2001년부터 2007년까지 6년, 일본 1985년부터 1991년까지 약 7년. 세 사례 모두 5년에서 10년이라는 시간 안에 누적이 깔때기 출구에 도달했습니다. 다른 시대, 다른 나라, 다른 종류의 위기였는데 누적의 시간만은 거의 같았습니다. 5년에서 10년이라는 시간은 한 나라의 경제 시스템이 자기 보상으로 버틸 수 있는 한계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누적이 시작된 직후에는 시스템이 정부의 새 정책, 기업의 비용 절감, 가계의 소비 조절로 압력을 흡수하지만, 5년을 넘으면 자기 보상의 여유분이 점점 줄어들고 7~10년 사이에 거의 모두 소진됩니다.

이 5년에서 10년이라는 누적 시간은 5단계의 검증에서 함께 확인된 6개월의 선행 검출과 함께 이해해야 합니다. 5년에서 10년의 누적이 진행된 뒤, 본격적인 위기가 표면에 나타나기 직전 6개월에 거시 지표에 흔들림이 먼저 잡힙니다. 1997년 한국 외환위기에서는 1997년 5월에 신호가 임계에 도달했고 11월 21일에 IMF 구제금융 신청이 이루어졌습니다. 약 6개월의 선행 시간이 있었습니다. 2008년 미국 글로벌 금융위기에서도 2008년 3월에 신호가 임계에 도달했고 9월 15일에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했습니다. 또 6개월입니다. 5년에서 10년의 깔때기 누적이 마지막 6개월 동안 거시 지표에 흔들림으로 압축되어 나타나는 것입니다. 흔히 "위기가 갑자기 왔다"고 말하는 그 표면화 시점은 사실 깔때기에서 모인 압력이 마지막 출구로 쏟아져 나오는 순간일 뿐이고, 진짜 시작은 그보다 5년에서 10년 전에 이미 시작되어 있었습니다.

이 시간 흐름이 깔때기론의 가장 큰 효용을 만들어 냅니다. 위기가 본격적으로 표면에 나타나기 전에 5년에서 10년이라는 비교적 긴 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안에는 누적의 차수를 짚어 보고, 어느 차수에서 어느 정도까지 진행되었는지 점검하고, 가능하면 누적의 속도를 늦출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있습니다. 위기를 완전히 막는 것은 어렵지만, 위기까지 가는 시간을 늘리거나 위기의 강도를 줄이는 일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깔때기의 입구에서 무엇이 누적되고 있는지를 미리 알아채는 것이 그 첫걸음입니다.

한국·미국·일본 세 사례의 누적 7년 비교

사례누적 시작위기 표면화누적 기간
한국 외환위기1990년 (시장 자유화)1997년 11월 (IMF 구제금융)약 7년
미국 금융위기2001년 (저금리 진입)2008년 9월 (리먼 파산)약 6년
일본 자산 거품1985년 (플라자 합의)1991년 (자산 거품 붕괴)약 7년

깔때기를 알면 무엇이 보이는가

깔때기론을 차례로 풀이해 본 까닭은 한 가지입니다. 깔때기의 모양을 알면 한 나라의 경제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짚어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한 나라의 경제는 너무 크고 복잡해서 보통의 시민이 그 전체를 들여다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1·2·3차 트리거와 출구의 네 DIAH 트리거라는 도구가 있으면, 매일 받아 보는 뉴스 기사 속에서 어느 차수에 어느 정도의 누적이 진행되고 있는지를 짚어 볼 수 있습니다. 정책 결정자나 경영진의 어떤 판단 오류가 굳어 있는지, 가계와 기업의 어떤 지출 습관이 매일 누적되고 있는지, 어떤 갑작스런 사건이 더해지고 있는지, 출구의 네 트리거 가운데 어느 것이 점점 진해지고 있는지를 점검할 수 있습니다.

같은 깔때기 구조가 한 나라뿐 아니라 한 가정과 한 회사 단위에서도, 한 사람의 건강에서도 작동합니다. 한 가정에서는 가장의 판단 오류가 1차로 굳어진 자리에 가족 구성원의 잘못된 지출 습관이 2차로 자라나고, 부모님의 갑작스런 질환이나 직장에서의 갑작스런 해고가 3차 사건으로 통과합니다. 한 회사에서는 경영진의 판단 오류가 1차로, 직원과 경영진의 잘못된 지출 결정이 2차로, 시장의 갑작스런 변화나 핵심 거래처 이탈이 3차로 통과합니다. 한 사람의 건강에서는 마음의 상태가 1차로, 잘못된 식습관과 운동 부족이 2차로, 갑작스런 부상이나 감염이 3차로 통과합니다. 출구의 네 트리거도 같은 모양입니다. 자원이 한쪽으로 쏠리는 소득양극화, 비용이 한꺼번에 오르는 비용폭발, 화폐 가치나 가격 기준이 흔들리는 물가폭등, 자원은 있는데 정작 필요한 곳에 안 가는 돈맥경화. 1·2·3차 트리거와 DIAH 출구의 모양이 매개체와 분야만 달리하면서 그대로 보존됩니다.

결론은 한 가지로 모입니다. 깔때기 구조는 보편 구조라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몸이든, 한 가정이든, 한 회사든, 한 나라의 경제든 같은 깔때기를 따라갑니다. 1·2·3차 트리거의 시간 순서도 같고, 출구의 네 트리거도 같고, 누적에 걸리는 5년에서 10년이라는 시간도 비슷합니다. 매개체가 무엇이냐, 분야가 어디냐만 달라질 뿐 깔때기의 모양 자체는 그대로 보존됩니다. 이 보편성이 깔때기론을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가장 큰 근거입니다.

이렇게 누적된 압력이 어느 순간 임계를 넘으면 5단계 가운데 2단계, 곧 시작 단계로 넘어갑니다. 깔때기에서 모인 압력이 출구를 통해 본격적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 한 나라의 경제는 비상 자원을 동원하기 시작합니다. 가계는 적금을 깨고 마이너스 통장을 늘리고, 기업은 사내 유보금을 꺼내고, 정부는 외환보유고를 풀거나 긴급 재정을 투입합니다. 미래의 자원을 미리 끌어와 현재의 위기를 막는 비상 작용입니다. 인체에서는 뼈에서 칼슘이 유출되고, 한 나라의 경제에서는 가계와 기업과 정부가 대출을 받아 이자가 발생합니다. 매개체가 칼슘에서 현금으로 바뀌었을 뿐 동작은 같습니다. 이 책은 이 단계의 정식 이름을 유출론이라 부릅니다.

참고문헌

1. Kindleberger, C. P., & Aliber, R. Z. (2011). Manias, Panics, and Crashes: A History of Financial Crises (6th ed.). New York: Palgrave Macmillan.
2. Minsky, H. P. (1986). Stabilizing an Unstable Economy.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3. Reinhart, C. M., & Rogoff, K. S. (2009). This Time is Different: Eight Centuries of Financial Folly.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4. Scheffer, M., Bascompte, J., Brock, W. A., Brovkin, V., Carpenter, S. R., Dakos, V., Held, H., van Nes, E. H., Rietkerk, M., & Sugihara, G. (2009). Early-warning signals for critical transitions. Nature, 461(7260), 53–59.

『물리경제학 시대선언』 시리즈
93프롤로그: 왜 경제 전문가는 위기를 보지 못하는가94체온만 재고 환자를 퇴원시키는 의사95당신이 보는 경제 지표는 3개월 전 사진이다96수혈은 했는데 환자가 죽었다97차이가 없으면 아무것도 흐르지 않는다 (1)98차이가 없으면 아무것도 흐르지 않는다 (2)99경제는 멈추는 순간 죽는다 (1)100경제는 멈추는 순간 죽는다 (2)101다섯 학파가 똑같이 놓친 한 가지 (1)102다섯 학파가 똑같이 놓친 한 가지 (2)103인체와 경제는 같은 설계도를 쓴다104모든 붕괴는 같은 다섯 단계를 밟는다 (1)105모든 붕괴는 같은 다섯 단계를 밟는다 (2)106모든 붕괴는 같은 다섯 단계를 밟는다 (3)107경제 위기는 하루아침에 오지 않는다현재 글108위기가 시작되는 첫 단추 (1)109위기가 시작되는 첫 단추 (2)110두 개의 마비가 동시에 오면 회복은 없다 (1)111두 개의 마비가 동시에 오면 회복은 없다 (2)112같은 원인이 일곱 가지 얼굴로 나타난다113무너진 자리에서 순환은 다시 시작된다114경제에도 건강검진서가 필요하다115세 개의 눈이 한 점에서 만날 때116같은 충격도 기저질환이 있으면 더 깊이 무너진다117밤에 불이 꺼지면, 그 경제는 멈춘 것이다 (1)118밤에 불이 꺼지면, 그 경제는 멈춘 것이다 (2)119한국 351개월이 증명한 것 (1)120한국 351개월이 증명한 것 (2)121한국 351개월이 증명한 것 (3)122미국 339개월도 같은 답을 가리켰다 (1)123미국 339개월도 같은 답을 가리켰다 (2)124미국 339개월도 같은 답을 가리켰다 (3)125위기는 밖에서 끊기거나, 안에서 막힌다 (1)126위기는 밖에서 끊기거나, 안에서 막힌다 (2)127위기는 밖에서 끊기거나, 안에서 막힌다 (3)128월간 경제 진단서, 30초에 읽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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