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장에서 우리는 자연계의 네 가지 풍경을 기울기의 언어로 다시 읽었습니다. 이제 같은 문법을 인체로 가지고 들어갑니다. 인체 안에서도 기울기는 도처에 있습니다. 혈관 안을 흐르는 피는 압력 기울기 위에서 움직이고, 폐포에서 혈액으로 들어오는 산소는 농도 기울기를 따라 이동하며, 신경세포의 신호는 세포막 안팎의 전위 기울기가 만드는 전기 펄스입니다. 이 세 가지 기울기가 서로 맞물려 있는 시스템이 바로 사람의 몸입니다.
이 장의 첫 번째 목표는 이 기울기의 풍경을 간단히 지도로 그려 보이는 것입니다. 어디에 어떤 기울기가 있고, 각각이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 확인합니다. 두 번째 목표는 그 기울기가 무너지는 순간 어떤 경로로 질병이 발생하는지를, 특히 인체가 보유한 가장 중요한 하나의 기울기(세포 안팎의 1만 배 칼슘 농도 차이)를 중심으로 기술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목표가 이 장에서 가장 논쟁적인 부분입니다. 현대 의학이 오랫동안 근본 원인을 규명하지 못한 채 남겨 둔 질환들, 특히 고혈압과 당뇨병이 어떻게 기울기 붕괴의 경로로 통합적으로 설명되는가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이 주장의 물리적 근거는 미세혈관의 석회화, 즉 기울기가 무너질 때 인체가 그 붕괴를 물리적으로 고착시키는 과정에 있습니다. 의학의 언어로는 혈관 석회화라 부르고, 이 책의 언어로는 "기울기 붕괴의 물리적 고착"이라 부르게 될 현상입니다.
이 장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 석회화의 두 가지 경로(뼈에서 혈관으로 칼슘이 이동하는 내인성 경로와, 외부에서 유입된 칼슘과 인이 혈관에 침착되는 외인성 경로)를 구분합니다. 이 구분은 제9장에서 노화·만성질환의 실제 경로를 다룰 때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됩니다. 자, 이제 인체 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세 가지 기울기: 압력, 농도, 전위
인체에 작동하는 기울기는 다양하지만, 대표적인 세 가지 유형으로 묶을 수 있습니다. 압력 기울기, 농도 기울기, 전위 기울기. 이 셋이 각각 서로 다른 시스템을 구동하면서, 동시에 서로 맞물려 몸 전체의 흐름을 유지합니다.
압력 기울기는 혈액 순환의 엔진입니다. 심장이 매분 약 5리터의 피를 뿜어 올릴 때, 좌심실 수축기 압력은 약 120 mmHg에 이르고, 대동맥을 지나 소동맥·모세혈관·세정맥을 거치면서 압력이 점진적으로 떨어져 우심방에 이를 때에는 0 mmHg에 가까워집니다. 이 압력 차이가 혈액을 한 방향으로 밀어 내는 물리적 구동력입니다. 압력 기울기가 사라지는 순간, 즉 심장이 멈추는 순간 혈액은 정체되고 조직은 산소 공급을 잃습니다. 심장이 하루 약 10만 번 박동하면서 하루 7,000리터 이상의 혈액을 뿜어 올리는 것은 이 압력 기울기를 끊임없이 재생성하는 일입니다.
농도 기울기는 호흡·신장·세포 수준에서 각각 작동합니다. 폐포의 산소 분압은 약 100 mmHg, 폐모세혈관으로 들어오는 정맥혈의 산소 분압은 약 40 mmHg입니다. 이 60 mmHg의 차이가 산소를 폐포에서 혈액으로 확산시키는 동력이고, 조직에서는 반대 방향의 농도 기울기가 산소를 혈액에서 세포로 배달합니다. 신장에서는 사구체 양쪽의 정수압과 교질삼투압 차이가 혈장을 여과해 성인 기준 하루 약 180리터의 원뇨를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세포 수준에서는 세포 안팎에 존재하는 농도 차이들이 생명의 신호를 집행합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하나가 칼슘 이온의 기울기이며, 이에 대해서는 다음 소절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전위 기울기는 신경계와 심장의 전기 시스템을 구동합니다. 휴지 상태의 신경세포막은 세포 안이 바깥보다 약 70밀리볼트(mV) 낮은 음의 전위를 유지하는데, 이를 정지 전위라고 부릅니다. 자극이 들어오면 나트륨 채널이 열리며 세포 안이 순간적으로 +30 mV까지 양전위로 전환되고, 이 변화가 축삭을 따라 빠르게 전파되며 활동 전위가 만들어집니다. 나트륨-칼륨 펌프는 이 전위 기울기를 끊임없이 재생성하는 장치로, 자신이 소비하는 ATP 한 분자당 나트륨 3개를 밖으로, 칼륨 2개를 안으로 옮깁니다. 이 펌프가 작동을 멈추면 세포의 전기 신호는 수 분 내에 소멸합니다. 심장의 박동도 동일한 전위 기울기 기전 위에서 일어나며, 심전도(ECG)는 이 전기 기울기의 변화를 몸 밖에서 측정하는 기록입니다.
이 세 기울기가 서로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혈액이 압력 기울기로 이동해야 산소의 농도 기울기가 유지되고, 농도 기울기를 통해 세포에 ATP가 공급되어야 나트륨-칼륨 펌프가 작동해 전위 기울기가 유지되며, 전위 기울기가 정상이어야 심장이 박동해서 압력 기울기를 다시 만들어 냅니다. 세 기울기는 서로를 지지하는 하나의 삼각 구조 위에서 인체의 생명을 유지합니다. 이 구조 안에서 어느 한 축이 약해지면 다른 두 축도 함께 흔들리며, 이 연쇄가 특정 임계점을 넘을 때 임상적으로 질병이 발현됩니다.
칼슘: 1만 배의 기울기가 생명을 실행한다
인체에 존재하는 수많은 농도 기울기 가운데 물리적으로 가장 극단적인 것이 칼슘 이온의 기울기입니다. 세포 바깥의 칼슘 농도는 약 1 밀리몰라(mM) 수준이고, 세포 안의 자유 칼슘 농도는 약 100 나노몰라(nM) 수준입니다. 단위를 통일하면 약 1만 배의 차이가 세포막 안팎 사이에 유지되고 있습니다. 클라팸이 2007년 셀 학술지에 게재한 리뷰 논문(Clapham, 2007, Cell 131, 1047-1058)이 이 기울기의 규모와 의미를 종합 정리한 대표 문헌이며, 베리지 팀의 2000년 리뷰(Berridge et al., 2000, Nature Reviews Molecular Cell Biology)는 이 기울기가 어떻게 신호 전달의 보편적 문법으로 진화해 왔는지를 기술합니다.
이 1만 배 기울기가 물리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세포가 끊임없이 에너지(ATP)를 소모하여 칼슘 이온을 세포 바깥으로 퍼 내기 때문입니다. 세포막의 칼슘 펌프와 세포막·소포체에 존재하는 교환 수송체들이 이 일을 수행합니다. ATP 생산이 중단되면 펌프는 멈추고, 기울기는 서서히 소멸합니다. 즉 이 기울기는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기울기가 사라진 세포는 정의상 죽은 세포입니다. 이것은 제2장에서 이야기한 "정상성은 죽음"이라는 진술의 세포 수준 버전이며, 제4장에서 프리고진의 산일구조 이론이 말하는 "흐름이 멈추면 질서가 무너진다"의 가장 정밀한 사례입니다.
이 1만 배 기울기가 왜 중요한가. 이 기울기가 세포의 거의 모든 중요 기능을 물리적으로 실행하는 매개체이기 때문입니다. 수정란의 첫 분열은 정자가 난자에 진입한 뒤 일어나는 거대한 칼슘 파동이 개시합니다. 근육 수축은 근섬유 안 칼슘 농도가 약 100배 급증하는 순간에 발생합니다. 신경 말단에서 신경전달물질이 방출되는 것은 활동 전위가 말단에 도달해 칼슘 채널을 열고, 들어온 칼슘이 소포를 세포막과 융합시키는 순간에 일어납니다. 호르몬 분비도, 면역세포의 활성화도, 궁극적으로는 세포자살의 집행도 모두 칼슘 농도 변화를 통해 실행됩니다.
제4장에서 미첼의 화학삼투 원리를 다룰 때 기술한 "생명은 기울기 엔진이다"라는 문장이 칼슘 기울기 위에서 가장 명확하게 구현됩니다. DNA가 생명의 설계도라면 칼슘은 그 설계도를 물리적 현실로 실행하는 집행 코드입니다. 나트륨, 칼륨, 마그네슘 같은 다른 이온도 생명 활동에 필수적이지만, 1만 배에 이르는 극단적 기울기를 유지하는 이온은 칼슘이 유일합니다. 이 기울기가 무너질 때 발생하는 세포 수준의 사건들(칼슘 과부하, 미토콘드리아 붕괴, 세포자살)이 이후 장들에서 다룰 노화·만성질환의 세포 수준 공통 경로이기도 합니다.
미세혈관: 흐름이 일어나고 막히는 곳
인체의 순환이 실제로 일어나는 현장은 심장이나 대동맥이 아니라 미세혈관입니다. 미세혈관이란 소동맥(arteriole), 모세혈관(capillary), 세정맥(venule)을 통칭하는 말로, 직경이 수 마이크로미터에서 수십 마이크로미터에 이르는 가장 가는 혈관들입니다. 약 37조 개의 세포가 사는 인체 안에서, 이 미세혈관의 총 길이를 추정하면 대략 10만 킬로미터 정도로, 지구를 두 바퀴 넘게 감쌀 수 있는 길이에 해당합니다. 거의 모든 세포는 자신의 위치에서 수 마이크로미터 안에 최소 한 개의 모세혈관을 가지고 있고, 이 근접성이 산소·영양분의 공급과 이산화탄소·노폐물의 배출이 일어날 수 있는 물리적 조건을 제공합니다.
흐름이 실제로 일어나는 곳이라는 사실은 동시에, 흐름이 실제로 막히는 곳이라는 사실을 함축합니다. 제3장에서 다룬 푸아죄유 법칙의 r⁴ 비선형 민감도는 미세혈관 수준에서 가장 극적으로 작동합니다. 직경이 10 마이크로미터인 모세혈관의 반경이 1 마이크로미터만 줄어도 유량은 약 34% 감소하고, 2 마이크로미터가 줄면 약 59%, 5 마이크로미터가 줄면 94%가 감소합니다. 혈관 조영술이나 일반 초음파로는 포착되지 않는 이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변화가 실제 조직의 산소 공급을 결정적으로 좌우합니다.
이 대목이 현대 의학의 익숙한 약점과 맞닿아 있습니다. 임상에서 흔히 사용되는 영상 진단은 대동맥·관상동맥·뇌혈관 같은 상대적으로 굵은 혈관의 협착을 잘 포착합니다. 그러나 정작 인체의 대부분의 만성질환(당뇨병성 망막증, 당뇨병성 신장병, 말초신경병증, 알츠하이머 같은 신경퇴행성 질환)이 시작되고 진행되는 현장은 영상으로 잘 포착되지 않는 미세혈관입니다. 큰 혈관이 아직 괜찮아 보여도 미세혈관은 이미 광범위하게 손상되어 있을 수 있고, 사실 대부분의 만성질환은 바로 그 미세혈관 손상의 장기 누적이 표면화된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미세혈관은 어떻게 손상되는가. 이 질문에 대한 가장 강력한 물리적 답이 석회화입니다. 미세혈관의 벽에 칼슘과 인산염이 하이드록시아파타이트의 형태로 서서히 침착되고, 이 침착이 혈관 벽의 탄력성을 빼앗고 내경을 좁히며, 결국 r⁴ 민감도를 통해 조직의 유효 혈류를 급격히 감소시킵니다. 이 과정이 수년에서 수십 년에 걸쳐 조용히 진행되다가, 임계점을 넘는 순간 "갑작스러운" 임상 사건으로 표면화됩니다. 심근경색, 뇌경색, 당뇨병성 합병증, 만성콩팥병, 그리고 넓은 의미의 노화가 이 공통된 물리적 현장에서 발현되는 현상들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 미세혈관에 칼슘이 어떻게 침착되어 기울기 붕괴가 물리적으로 고착되는지, 그 석회화가 내인성과 외인성의 두 경로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리고 이 관점이 본태성 고혈압과 당뇨병이라는 의학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우는지를 살펴봅니다.
출처: 『만물의 법칙: 기울기』 제6장 '인체의 기울기' (1/2). 본문은 원고 그대로이며, 정보 제공 목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