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경제가 같은 원리로 움직인다는 이 책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한 가지 의문이 먼저 떠오릅니다. 왜 지난 150년 동안 아무도 이 통합을 해내지 못했을까요.
근대 과학이 본격적으로 출발한 19세기 중반 이후, 인류는 수많은 분야에서 놀라운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베토벤이 살아 있던 시절에는 현미경이 세포를 겨우 구분하는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원자 하나의 움직임을 추적합니다.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을 쓰던 시절에는 경제 지표라는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매 순간 전 세계의 유동성이 실시간으로 측정됩니다. 이렇게 각 분야의 해상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는 동안, 왜 분야 사이를 가로지르는 공통의 원리는 발견되지 않았을까요.
답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원리는 이미 오래전에 알려져 있었습니다. 다만 각 분야가 서로 다른 언어로 그 원리를 기술하고 있었기 때문에, 같은 구조가 서로에게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의학이 "칼슘 과부하"라고 부르는 현상을 경제학은 "유동성 경색"이라고 부릅니다. 공학이 "압력차 소실"이라고 부르는 현상을 생리학은 "미세혈관 기능장애"라고 부릅니다. 같은 현상을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는 사실 자체가 학문 간의 공통 구조를 은폐하는 장벽이 되어 왔습니다.
이 장에서는 이 오랜 단절의 역사를 짚어보겠습니다. 현대 과학이 어떻게 수직으로 쪼개져 내려왔는지, 베르탈란피·프리고진·카우프만이라는 세 거인이 통합을 시도했으나 왜 그들의 제안이 구체적 경로로 내려오지 못하고 추상적 선언에 머물렀는지, 그리고 이 책이 그들이 남긴 자리에 어떻게 서려 하는지를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왜 지금까지 아무도 통합하지 않았는지를 이해해야, 이 책이 하려는 일이 왜 지금 필요한지가 비로소 드러납니다.
과학은 어떻게 쪼개지며 내려왔는가
19세기 과학의 가장 큰 성취는 쪼개기였습니다.
19세기 중반까지 유럽의 지식인들은 대체로 자연철학자로 불렸습니다. 한 사람이 물리와 화학과 생물학과 철학을 함께 논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대였고, 뉴턴도 역학과 광학과 연금술과 신학을 동시에 썼습니다. 그런데 1840년대 이후 이 통합된 지식 체계가 급격히 갈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영어권에서 "과학자(scientist)"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자리 잡은 것이 19세기 중반이고, 이 용어의 등장과 거의 같은 시기에 각 분과 학문들이 자기만의 전문 학회를 설립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분화가 가속되는 과정에서 인류는 막대한 것을 얻었고, 동시에 막대한 것을 잃었습니다.
의학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19세기 중반 독일의 병리학자 루돌프 피르호가 "모든 세포는 세포에서 나온다"고 선언하면서, 의학은 장기 수준의 관찰에서 세포 수준의 관찰로 내려갔습니다. 19세기 후반 파스퇴르와 코흐의 세균학은 질병의 원인을 육안의 세계에서 현미경의 세계로 옮겨 놓았습니다. 20세기 전반의 생화학은 세포 안 분자들의 반응 경로를 해독했고, 20세기 중반 왓슨과 크릭이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밝히면서 의학은 분자 수준으로 내려갔습니다. 20세기 후반의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해상도를 염기서열 수준까지 끌어내렸고, 21세기의 단일세포 시퀀싱은 한 개의 세포 안에서 일어나는 유전자 발현까지 실시간으로 추적합니다. 이 수직 하강의 여정에서 인류는 수많은 기적을 성취했습니다. 감염병 정복, 항생제, 백신, 장기 이식, 유전자 치료, 정밀의학.
그러나 대가가 있었습니다. 해상도가 높아질수록 시야가 좁아졌습니다. 세포를 보는 동안 조직이 보이지 않게 되었고, 분자를 보는 동안 세포 사이의 관계가 보이지 않게 되었으며, 유전자를 보는 동안 몸 전체가 하나의 흐름 시스템이라는 사실이 시야에서 멀어졌습니다. 현미경의 배율을 한 단계 높일 때마다 몸의 어느 한 부분은 기가 막힐 만큼 선명해졌지만, 몸 전체의 풍경은 그만큼 희미해졌습니다. 프롤로그에서 쓴 문장이 여기서 다시 유효합니다. 현미경의 배율을 아무리 높여도 세포는 보이지만, 그 세포 주위로 흐르는 강은 오히려 보이지 않습니다.
경제학도 같은 구조의 분화를 밟았습니다.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과 리카도의 《정치경제학 원리》가 하나의 통합된 고전학파를 형성하던 시절까지만 해도, 경제는 "국가 전체의 흐름"이라는 거시 관점에서 다루어졌습니다. 그러나 19세기 말 한계효용 혁명 이후 경제학은 개인의 선택 문제로 내려갔고, 20세기 초 케인즈가 다시 거시로 끌어올린 후에는 케인지언과 통화주의, 신고전학파와 행태경제학으로 수평 분화가 가속되었습니다. 21세기에 들어서는 계량경제학과 행태경제학이 다시 개별 의사결정의 미시 메커니즘으로 내려갔습니다. 분화의 방향은 의학과 달랐지만, 결과는 같았습니다. 각 학파가 자기 도구의 정밀도를 높이는 동안, 경제를 하나의 흐름 시스템으로 조망하는 시선은 점점 희박해졌습니다.
분화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전문화가 없었다면 인류는 현대 의학도 현대 경제학도 가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문제는 분화 자체가 아니라, 분화된 이후 다시 합쳐지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분업은 발전을 만들지만, 재통합이 없으면 조망은 불가능합니다. 몸이라는 하나의 시스템을 수천 개의 질병으로 쪼개 놓고 그것을 다시 꿰는 끈이 없다면, 고혈압과 당뇨와 치매는 영원히 서로 무관한 이름으로 남습니다. 경제라는 하나의 시스템을 수백 개의 지표로 쪼개 놓고 그것을 다시 꿰는 실이 없다면, 위기는 언제나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만 도착합니다.
통합을 시도했던 세 사람
학문 분화의 문제점을 가장 먼저 체계적으로 제기한 사람은 오스트리아의 생물학자 루트비히 폰 베르탈란피였습니다. 그는 1937년부터 강의를 통해, 이후 1968년 《일반시스템이론(General System Theory)》이라는 저서로 자신의 주장을 정리했습니다. 책의 핵심 주장은 이것입니다. 서로 다른 학문이 연구하는 시스템들 사이에는 구성 요소의 본질과 무관하게 성립하는 공통의 법칙이 존재한다. 그는 이를 "동형성(isomorphism)"이라고 불렀습니다. 생물의 성장 곡선과 인구 통계의 성장 곡선이 같은 수식 구조를 가진다는 사실, 신경망의 피드백 회로와 냉난방 장치의 피드백 회로가 같은 원리를 공유한다는 사실이 그 예였습니다.
베르탈란피의 통찰은 심오했습니다. 그는 전통적 과학이 시스템을 부분의 합으로 환원하려 해 왔다는 점을 지적하며, 살아 있는 시스템은 닫힌 시스템이 아니라 환경과 에너지·물질을 주고받는 열린 시스템이라는 점을 명확히 정식화했습니다. 이 열린 시스템에는 물리학의 평형 열역학이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체계적으로 논증했고, 이 통찰은 이후 반세기 동안 시스템 과학, 사이버네틱스, 생태학, 조직학 등 수많은 분야에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베르탈란피의 작업에는 결정적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가 제안한 동형성이 추상 수준에 머물렀다는 점입니다. 그는 여러 시스템이 공통의 수학적 구조를 가진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지만, 그 구조가 어떤 구체적 경로로 작동하고 어떻게 무너지는지는 기술하지 않았습니다. 서로 다른 학문들이 같은 틀을 공유한다는 선언은 있었지만, 그 틀 안에서 시스템이 어떤 순서로 탄생하고 유지되고 사멸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부재했습니다. 통합의 방향은 제시되었으나, 통합의 내용은 후대에 숙제로 남았습니다.
두 번째 거인은 벨기에의 화학자 일리야 프리고진입니다.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브뤼셀에서 연구한 그는 1977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고, 수상 이유는 "비평형 열역학에 대한 공헌, 특히 산일구조(dissipative structure) 이론"이었습니다. 프리고진의 가장 유명한 실험 사례는 베나르 불안정성이라고 불리는 현상입니다. 액체를 아래에서 가열하면 처음에는 무질서한 열전도로 열이 위로 전달되지만, 어느 임계점을 넘어서면 갑자기 규칙적인 육각형 대류 세포가 자발적으로 형성됩니다. 질서가 무질서에서 저절로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프리고진은 이러한 현상이 화학 반응계와 생물학적 시스템에서도 광범위하게 일어난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했습니다. 생명체 자체가 에너지를 끊임없이 소모하며 질서를 유지하는 대표적 산일구조라는 점이, 그의 연구 이후 과학계의 공통 인식이 되었습니다.
프리고진의 기여는 열역학 제2법칙의 해석을 근본적으로 바꾸었습니다. 기존 열역학이 "엔트로피는 증가한다"는 법칙을 닫힌 시스템에서만 엄격히 적용했다면, 프리고진은 이를 열린 시스템으로 확장하여 에너지의 흐름이 유지되는 한 시스템은 질서를 유지할 수 있음을 보였습니다. 이 결과는 생명, 기상, 화학 반응, 나아가 경제 현상에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되었고, 1984년에 이자벨 스텐저스와 공저한 《혼돈으로부터의 질서(Order Out of Chaos)》는 이 아이디어를 일반 독자에게 전달한 명저로 평가받습니다.
그러나 프리고진 역시 결정적 공백을 남겼습니다. 그는 질서가 어떻게 탄생하고 유지되는지는 정교하게 기술했지만, 그 질서가 어떤 경로로 무너지는지는 체계적으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산일구조는 에너지 공급이 끊기면 무너진다는 원리 수준의 진술은 있었지만, 에너지 공급이 서서히 줄어들 때 시스템이 어떤 단계를 거쳐 붕괴에 이르는지, 그 붕괴가 도메인을 넘어 어떻게 반복되는지에 대한 구체적 경로는 제시되지 못했습니다. 탄생의 이론은 완성되었으나, 사멸의 이론은 미완성이었습니다.
세 번째 거인은 미국의 의사이자 이론생물학자 스튜어트 카우프만입니다. 그는 1993년 《질서의 기원(The Origins of Order)》이라는 700쪽이 넘는 저서를 통해, 진화가 자연선택만의 산물이 아니라 자기조직화(self-organization)의 결과이기도 하다는 주장을 정식으로 제기했습니다. 그는 복잡한 시스템이 일정 조건만 갖추면 외부의 설계 없이도 자발적으로 놀라운 질서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수학적 모델과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보여 주었고, 이러한 자기조직화가 생명의 기원과 진화의 중요한 동력이라고 논증했습니다. 그는 시스템이 완전한 질서와 완전한 혼돈 사이에서 가장 복잡하고 적응적인 행동을 보이는 지점을 "혼돈의 경계(edge of chaos)"라고 불렀고, 이 개념은 생물학에서 경제학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카우프만의 기여는 진화론에 자기조직화라는 새로운 축을 도입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다윈 이래 진화는 자연선택이라는 외부 압력에 의해 형성된다는 관점이 지배적이었는데, 그는 시스템 내부의 자발적 질서 형성이 자연선택 이전에 이미 작동한다는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이 관점은 생물학·발생학·면역학뿐 아니라 경제학·조직학·인공생명 연구에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카우프만의 작업에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는 질서가 어떻게 탄생하는지는 깊이 있게 다루었지만, 탄생한 질서가 어떤 경로로 붕괴하는지는 체계적으로 기술하지 않았습니다. 혼돈의 경계라는 개념은 시스템이 적응적이고 복잡한 상태를 유지하는 조건을 설명했을 뿐, 그 조건이 깨졌을 때 시스템이 어떤 단계를 밟아 무너지는지에 대한 구체적 경로는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프리고진과 마찬가지로, 탄생의 설명은 정교했지만 사멸의 설명은 미완성이었습니다.
세 거인이 공유한 한계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그들은 통합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했지만, 그 통합이 어떤 구체적 경로를 밟는지를 보여 주지는 못했습니다. 서로 다른 학문이 같은 구조를 공유한다는 선언은 있었으나, 그 구조 내부의 경로는 비어 있었습니다. 바로 이 빈 자리가 이 책이 채우려는 자리입니다.
같은 현상에 세 가지 이름이 붙어 있는 시대
통합이 막혀 있었던 두 번째 이유는 더 실용적인 것이었습니다. 각 학문이 같은 물리 현상에 서로 다른 이름을 붙여 왔기 때문입니다. 이름이 다르면 사람들은 서로가 같은 것을 보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언어가 곧 구조의 장벽이 되는 순간입니다.
구체적인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세포생물학자가 "칼슘 과부하(calcium overload)"라고 부르는 현상이 있습니다. 세포 바깥에 있어야 할 칼슘이 세포 안으로 과다하게 유입되어 세포 안 신호 체계와 에너지 대사가 동시에 마비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심근경색의 급성 세포 손상 과정이 바로 이 현상이고, 뇌경색과 신부전의 세포 단위 메커니즘에도 같은 개념이 작동합니다.
심장내과 의사가 "동맥경화(atherosclerosis)"라고 부르는 현상은 이름은 다르지만 물리적으로는 위의 현상과 연속된 사건입니다. 혈관 벽에 콜레스테롤과 칼슘이 침착되어 혈관의 내경이 좁아지고 탄력이 소실되는 상태입니다. 동맥경화가 진행되면 말단 미세혈관의 혈류가 감소하고, 조직으로의 산소 공급이 줄어들며, 최종적으로 세포 수준에서 칼슘 과부하가 발생합니다. 거시의 동맥경화와 미시의 칼슘 과부하는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진 같은 과정의 서로 다른 단계입니다.
그런데 경제학자가 "유동성 경색(liquidity freeze)"이라고 부르는 현상도 본질적으로 같은 구조의 다른 발현입니다. 돈이라는 매개체가 금융 시스템의 경로를 원활히 통과하지 못하고 특정 지점에 정체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2008년 9월 리먼 브라더스 파산 직후 뉴욕의 은행 간 단기 대출 시장이 얼어붙었던 현상이 이것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한 경로에서의 침착이 전체 시스템의 유동성 흐름을 비선형적으로 급감시키고, 그 급감이 시스템 곳곳의 말단 경색을 야기합니다. 이 물리적 구조는 혈관 내 칼슘 침착이 혈류를 비선형적으로 급감시키고, 그 급감이 세포 수준의 칼슘 과부하를 유발하는 구조와 정확히 같습니다.
세포생물학자와 심장내과 의사와 경제학자가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는 단순한 사실이, 한 세기 넘도록 이 세 현상의 공통 구조를 은폐해 왔습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는 자기 학문의 용어집 안에서만 사고하고, 다른 분야의 용어를 보면 "저것은 내 분야가 아니다"라고 반사적으로 판단합니다. 칼슘 과부하를 연구하는 세포생물학자가 경제 뉴스에서 유동성 경색이라는 표현을 보더라도, 그것이 자기가 매일 관찰하는 현상과 같은 구조라는 사실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유동성 위기를 연구하는 경제학자가 의학 논문의 "미세혈관 기능장애"라는 표현을 읽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현상을 서로 다른 언어로 기술하는 사이에, 공통의 구조는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전문 용어는 그 분야 안에서는 정밀함의 도구이지만, 분야 사이에서는 소통의 장벽입니다. 그리고 학문 통합이 번번이 실패한 결정적 이유는 각 분야가 자기 용어집을 포기하지 않고도 서로의 언어를 번역할 공통의 문법을 가져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번역할 문법이 없으면, 서로 같은 것을 보고 있다는 사실은 증명될 수 없습니다.
이 책이 채우러 온 자리
베르탈란피는 학문 간 동형성이 존재한다고 선언했습니다. 프리고진은 질서가 어떻게 탄생하는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카우프만은 자기조직화의 원리를 정식화했습니다. 이 세 거인은 통합의 방향을 가리켰으나, 그 방향을 따라 구체적으로 어디에 도달하는지는 보여 주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남긴 숙제는 분명합니다. 추상적 선언을 구체적 경로로 내리는 일. 서로 다른 분야의 언어를 하나의 물리 문법으로 번역하는 일. 탄생의 설명에 사멸의 설명을 덧붙이는 일.
이 책은 그 세 가지 숙제를 한 번에 다루려 합니다.
첫째, 이 책은 추상적 선언에 머물지 않습니다. 몸과 경제가 같은 원리로 움직인다는 주장을 구체적인 다섯 단계 경로로 기술합니다. 요인이 축적되는 단계, 임계점에서 시작되는 단계, 흐름이 봉쇄되는 단계, 증상이 발현되는 단계, 시스템이 궤멸에 이르는 단계. 이 다섯 단계는 인체의 만성질환 경로에서든 국가 경제의 위기 경로에서든 예외 없이 반복됩니다. 막연한 동형성이 아니라 반복 가능한 경로로서의 통합입니다.
둘째, 이 책은 각 분야의 용어를 하나의 물리 문법으로 번역합니다. 세포생물학의 "칼슘", 심장내과의 "혈류", 경제학의 "유동성"이라는 서로 다른 이름 뒤에 있는 공통 구조는 "기울기에 의해 구동되는 매개체의 흐름"이라는 하나의 물리 원리입니다. 매개체는 칼슘이든 피든 돈이든 달라지지만, 그 매개체가 흐르는 이유는 동일한 물리 법칙에 지배됩니다. 이 원리를 이 책에서는 기울기라고 부르고, 그 문법을 이후의 장들에서 하나씩 소개하겠습니다.
셋째, 이 책은 탄생의 설명을 넘어 사멸의 설명을 제공합니다. 시스템이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질서를 유지하는지는 프리고진과 카우프만이 정교하게 다루었으니, 이 책은 그들이 남긴 빈 자리를 채워 시스템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기술합니다. 그리고 그 붕괴의 경로가 인체와 거시경제라는 두 독립된 도메인에서 실제 데이터로 검증 가능하다는 점을 이 책은 증명하려 합니다. 저자의 연구실에서는 인체의 주요 만성질환의 발병 경로를 이 다섯 단계 경로로 재분류해 왔고, 한국과 미국의 거시경제 시계열 690개월, 즉 약 57년치 데이터에 동일한 경로를 적용하여 실증 결과를 산출했습니다. 이 검증의 세부 내용은 이 책의 후반부에서 다룰 것이므로, 여기서는 이 책이 추상적 주장에 머물지 않고 실증 가능한 구체적 경로를 제시한다는 점만 분명히 해 두겠습니다.
이것이 이 책이 베르탈란피·프리고진·카우프만이 남긴 자리에 서려는 이유입니다. 세 거인이 옳은 방향을 가리켰지만, 그 방향을 따라 끝까지 내려가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끝까지 내려가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통합의 내용이 아니라 통합의 언어가 부재했기 때문입니다.
결론
이 장에서 살펴본 것은 하나의 단순한 사실입니다. 인류가 지금까지 몸과 경제를 같은 원리로 이해하지 못했던 이유는 원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언어가 달랐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같은 현상에 세 가지 이름이 붙어 있는 시대였고, 각 분야의 거인들이 통합의 방향은 가리켰으나 구체적 경로를 내놓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자리는 바로 그 빈 공간에 있습니다.
다음 장에서는 이 책의 핵심 개념인 기울기가 무엇인지를 본격적으로 소개하겠습니다. 기울기는 이 책이 만들어낸 신조어가 아닙니다. 150년 전부터 물리학이 알고 있던 원리이며, 다만 지금까지 의학과 경제학이 각자의 언어 안에 가두어 두었던 원리입니다. 그 원리가 어떻게 혈액의 흐름과 돈의 흐름을 동시에 설명하는지, 그리고 그 원리가 무너지는 순간 세포든 국가든 예외 없이 죽음으로 향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다음 장에서 보여 드리겠습니다.
참고문헌
- Bertalanffy, L. von (1968). General System Theory: Foundations, Development, Applications. New York: George Braziller.
- The Nobel Foundation. (1977). The Nobel Prize in Chemistry 1977: Ilya Prigogine "for his contributions to non-equilibrium thermodynamics, particularly the theory of dissipative structures." https://www.nobelprize.org/prizes/chemistry/1977/prigogine/facts/
- Prigogine, I., & Stengers, I. (1984). Order Out of Chaos: Man's New Dialogue with Nature. New York: Bantam Books.
- Kauffman, S. A. (1993). The Origins of Order: Self-Organization and Selection in Evolution.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 Watson, J. D., & Crick, F. H. C. (1953). A structure for deoxyribose nucleic acid. Nature, 171, 737-738.
- Crick, F. (1970). Central dogma of molecular biology. Nature, 227, 561-563.
- Encyclopaedia Britannica. Rudolf Virchow.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Rudolf-Virchow
- Wikipedia. Systems theory (overview and historical sources on Ludwig von Bertalanffy). https://en.wikipedia.org/wiki/Systems_theory
출처: 『만물의 법칙: 기울기』 제1장. 본문은 원고 그대로이며, 정보 제공 목적입니다.